단상 2023년 8월
- 진실한 사랑은 많은 사람의 죄를
자신의 죄로 돌리는 것입니다. -
사랑의 님이시여,
요즈음은 나의 주변 환경과 사회가 너무 더워져서
시원한 공간과 소통가능한 사람을 찾아 나서고 있나이다.
너무 갑갑하고 뜨거운 공간은
이웃과의 불통에서 오는 것이 가장 심하나이다.
최근 며칠 동안 저희 마을에서 있었던 일을
함께 공유하고자 하나이다.
미사 시간 강론 때의 일입니다.
저희들은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미사를 봉헌하나이다.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어느 정도는 있는 것 같나이다.
많은 날들 동안 뜨거운 날이 지속되었나이다.
제가 가족들에게 여쭈었습니다.
카눈태풍이 강력한 위력으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족 분들은 걱정을 하지 않으셔도 되나이다.
왜냐하면 우리 포항들꽃마을은 넓은 지역이면서도
전체 지면 구조가 완만한 경사를 유지하고 있어
아무리 큰 폭우라도 고이지 않고 빠져 나가는
자연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키가 크고 오래된 소나무가 마을 전체를 감싸고 있기 때문에 폭풍의 강한 바람에도 그렇게 심하게 타격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니 카눈 태풍을 두려워하지 마시고
편안한 마음으로 주님 품에 안겨 계시면 되나이다.
그리고 제가 가족분들께 여쭈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안전한 구조를 갖고 있으니
태풍이 크게 지나면서 지금까지 뜨거운 열기를 식혀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의 이 말에 동의하시는 분 손들어 보세요?”
하고 말을 하니 대부분의 가족들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때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불같은 화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나이다.
제가 갑자기 화가 난 이유는 이러하나이다.
“가족 여러분 우리는 아무리 큰 태풍이 닥쳐도 안전하지만
이 카눈 태풍으로 인해 소중한 생명을 잃는 사람들,
재산적 피해를 보는 사람들을 생각하지도 않느냐?”고
호통을 쳤습니다.
그들은 모두 우리의 사랑하는 이웃들입니다.
그들의 생명과 재산은 그들의 전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닥칠
어려움과 시련은 안 중에도 없고
잠시 더위를 식히는 데에 골몰하고 있는 가족들에게
너무나 황당함과 실망감을 느꼈습니다.
매일 미사 강론 때마다
주제가 되는 것이 이웃사랑이었나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흠숭하는 것과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법의 근본이다.”하셨나이다.
그리고 “하느님을 섬기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같다.”라고 말씀하셨나이다.
우리 신앙인들의 이웃사랑은
신앙의 뼈대이며 근본이며 기초이나이다.
우리는 한평생 이웃사랑에 대한 관계설정을 기준으로
마지막 공심판을 받게 되나이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이웃사랑은
구원과 멸망을 갈라놓는 기준이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의 터무니없는 대답에
어이가 없고 말문이 막혔나이다.
‘어렵게 형제•자매님들의 도우심으로
안락한 집과 양질의 식사를 제공 받고 있으면서
매일 미사로 영적 발전을 이루어가야 할 분들이
이럴 수가 있는가?’하는 마음에
영혼이 너무나도 아팠습니다.
‘이런 대답을 들으려고……
오랜 세월 동안 강론 때마다
이웃사랑을 그렇게 강조해 왔는데……
그때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으라.”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제 귀에 세차게 들려 왔나이다.
저는 가족분들에게 너무나 큰 실망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내일부터 강론 없이 평일 미사를 진행하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리고 강론 없이 반찬 없는 밥상에 앉은 사람들처럼
허전한 미사가 며칠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눈을 떠보니 온몸에 힘이 없고
기분은 완전히 다운된 상태인 저 자신을 보게 되었나이다.
‘아니, 오늘따라 웬일일까?’만사가 다 귀찮고
아름다운 꽃들도 모두 시들어 보였나이다.
힘든 영과 육을 억지로 바로 세우면서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었나이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이나이다.
“하느님 아버지, 제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오늘 아침 저의 상태는 마치 임종을 맞이하는 사람처럼
영혼과 마음 그리고 육신마저 누워있나이까?
제가 가족들에게 강론 중단으로
소통을 중단했기 때문이나이까?”하고 주님께 여쭈었습니다.
주님께서 “그렇다.”라고 답을 주시었습니다.
한 발짝 더 나아가 다시 주님께 여쭈었습니다.
“제가 가족들에게 이 만큼 물러서 있는 것이 잘못이나이까?”
주님께서 “아니다. 네 잘못은 없다.”하셨나이다.
“나를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아라.
나는 아무런 죄 없이 인간의 죄를 마치 나의 것처럼 인정하고
십자가를 메고 골고타 길을 향하였다.”는 말씀이
들리는 듯했나이다.
참으로 옳으신 말씀이옵나이다.
“여기 있는 가족들은 여느 사람들처럼 지금까지 인생 전반에 걸쳐
진심 어린 통회를 한 사람이 있나이까?”라고 여쭈니
“없다.”라고 주님께서 대답을 주셨나이다.
그때서야 정신이 번쩍 들면서
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꼭 닮아 가야 할 의무가 있는 목자로서
이네들과 인류의 죄를
저 자신이 진정한 죄인으로서 지고 가는 것이
저의 삶의 유일한 길임을 잠시 잊고 있었나이다.
“사랑이신 주님,
오늘부터 미사 때 강론을 다시 이어가면서
가족들과 소통과 사랑을 이어가겠나이다.”라고 말씀을 올리고 나니
저의 영혼과 육신이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오기 시작하였나이다.
어떠한 관계 속에서도 사랑과 소통을 끊지 않는 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임을 재차 확인하면서
저의 부족함을 하느님의 용서와 은총으로 풀어나가렵니다.
참으로 진실하신 님이시여,
오늘날의 세상은 이웃이 사라지고
오직 자신만이 있는 듯하나이다.
나에게 이웃이 없으면 신앙 또한 없으며
이는 하느님을 무시하는, 모독하는 행위라 보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해 오시는 님의 순수한 사랑에
감사와 존경을 마음을 드리고 싶습니다.
2023년 8월
들꽃마을 최비오 신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