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추운 겨울날, 고령시외버스 터미널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쓰러져 신음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아무런 생각 없이 할아버지를 사제관으로 모시고 함께 한 것이 들꽃마을의 시작인 줄은 몰랐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는 종으로서 가난한 이들과 항상 생사고락(生死苦樂)을 함께하셨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 사제 삶의 본질이라 합니다.
생태계에도 먹이사슬이 있듯이 인간 공동체에도 먹이사슬이 똑같이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가난한 이들은 사회 공동체의 제일 힘든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이들이 없으면 공동체의 먹이사슬이 끊어져 공동체 구조가 허물어 질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해 준 것이 곧 나에게 해준 것이다.” 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가난한 이들을 많이 잃어버렸습니다.
이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교회의 의지인 동시에 본성입니다.
이들이 부끄러움 없이 교회에 다시 오게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교회 자체가 가난해야 합니다.
우리는 정말 가난하고 청렴하게 살고 있는지 깊은 묵상을 해야 할 때입니다.
이들과 30년 이상을 살아오면서 저는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이들 가난한 이들에게는 미래도 세울 수 없고 과거를 원망할 기운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영원한 현재이신 하느님의 품 안에서 오늘의 공기만 마시고 있습니다.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라시는 주님의 천국 사다리가 이 들꽃마을 공동체에 있습니다.
저는 이분들의 성가 소리를 들으면서 주님의 나라에 가고 싶습니다.
“주님! 임종 날이 생애 제일 기쁜 날이 되게 하소서.”
아멘.
2023년 8월, 들꽃마을 최영배(비오) 신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