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2023년 3월)
교도소 독방에서의 개미는 공룡처럼 보이지만
넓은 운동장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사랑의 님이시여,
요즈음 세대같이 온 세상이
이기주의적 탐욕으로 가득한 세상은
지금까지 겪어 보지 못한
참으로 안타까운 시간으로 메워지고 있나이다.
우리 또한 모두 마찬가지로
심각한 경제난과 거꾸로 걷는 인간성의 고독 속에서
마음을 잠시라도 편히 뉘일 자리가 없는 듯하나이다.
서로 사랑하지는 못할망정
서로 헐뜯고 가진 자가 더 가지려는
자연의 생태계보다 못한 세상에 던져져 있나이다.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국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땅을 더 차지하려고 무고한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짓밟으면서 세상의 평화를 깨뜨리고 있나이다.
미국 또한 세계의 최강국으로서
지구촌의 경찰국가 노릇을 해 왔으면서도
어느새 경찰의 역할과 반대되는 행위를 서슴지 않고
약한 나라들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나이다.
강국의 피해를 보는 국가 중 한국도 포함되어
큰 어려움과 고통을 겪고 있나이다.
예전에는 비록 가난했지만, 마음의 공간은 넓었고
이웃들의 웃음과 슬픔이 항상 함께하였나이다.
온난화로 인한 자연재해의 공격 속에서
지구촌은 이제 어느 정도의 두려움을 가진 듯하오나,
여전히 세상 사람들은 탐욕과 풍요, 그리고 즐거움과 쾌락만을
쫓고 있는 듯하나이다.
이러한 감각적이고 본능적인 욕심 안에 갇혀 있는
우리 각자의 삶의 공간은 너무나 협소할 수밖에 없나이다.
이제 우리는 작은 일에 너무 민감하고 신경질적이며
큰일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사람들처럼
소통의 빈곤에 시달리면서 우울증 및 기타의 정신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나이다.
참으로 사랑하는 님이시여,
더 이상 좁은 공간에 갇히어 힘들어 하지 마시고
넓은 공간을 나오셔야 하나이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참으로 넓은 공간은
이 세상과 우주를 창조하신 하느님뿐이나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닮은 모습으로 우리를 만드셨고
그리고 우주 삼라만상을 지배하고 다스리라 하셨나이다.
우주 안에서 티끌 같은 작은 점 같은 지구에 살면서
하느님을 닮은 존재같이 크게 생각하고
멀리 보고 깊이 내려가면
우리의 일상의 큰 공룡 같은 사건도 개미처럼
작게 보고 취급할 수 있게 되나이다.
언제부터인가 무한한 공간이시며 무한한 시간이신 하느님을
우리는 줄지어 떠나고 있나이다.
겉으로는 ‘코로나 19’때문이라 평가 하지만
진실적인 것은 교회의 세속화 때문이라 보나이다.
하느님과 성직자(수도자), 그리고 평신도(양떼)들이
삼각 구도를 이루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교회가 되나이다.
오늘 날의 성직자들의 속도 빠른 세속화로
양떼들은 진정한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참 어려워졌나이다.
이런 식이라면 커다란 자연재해나
더 강력한 ‘코로나 19’가 다시 온다면
골고타의 주님 곁에 과연 몇 명이나 함께 할 수가 있겠나이까?
코로나 바이러스가 그렇게 심하게 활기를 띄다가
이렇게 갑자기 조용해진 것도 너무나 자연스럽지 못하며
지진에 대한 공포도 조금씩 갖기 시작하였나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세상의 풍요는
앞으로 더이상 만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하고 있나이다.
그리고 또 다른 환경과학자들은
이미 온난화의 임계점을 인류가 막을 수 없으며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새는 더 이상 날지 않고
나무는 부러지며
우산을 받쳐도 비를 피할 수 없는 시대 속으로
우리 인간 존재의 반을 이미 들여 놓고 있나이다.
참으로 진실하신 님이시여,
우리는 목자(성직자)를 보고 성당에 가는 것이 아니라
감실 안의 예수님을 뵈러 성당에 가는 것이나이다.
예수님의 품은 참으로 무한히 넓으시며
우리 각자의 모든 문제들을 담아도
무한한 주님의 공간은 그대로이나이다.
지금 어디고 가시나이까?
지금 누구랑 무슨 내용으로 전화를 걸고 계시나이까?
지금 내 지갑에 돈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걱정하지 마시고
내 마음과 영혼에 하느님의 호흡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확인하셔야 하나이다.
내가 죽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떠나면 모든 것의 모든 것을 잃으시나이다.
우리 각자의 존재에 육은 한 줌의 흙이며
영혼과 마음은 온 우주를 담을 만큼 넓고 크나이다.
참으로 우리가 육보다 영혼에
나의 존재의 중심을 옮겨 놓으신다면
빈곤과 고통, 질병과 아픔, 갈등과 괴로움, 슬픔과 우울함
이 모든 것들은 개미처럼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을 수 있나이다.
꼭 행복하셔야 하나이다.
참으로 어떠한 상황 앞에서도 넓은 영혼과 함께
편안하셔야 하나이다.
이대로 가면 서양교회처럼 한국교회도 멀지 않은 날에
절벽교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커지나이다.
하느님의 제일 아픈 고통은 양떼들이
주님에게 등을 돌리면서 떠나는 것이나이다.
우리가 머무를 곳은
바로 지구와 우주를 함께 섭리하고 계시는
하느님 뿐이나이다.
자신의 존재를 육의 호흡에 마지막으로 정리하지 마시고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하고 기쁘고 행복한 삶으로
이어가셔야 하나이다.
하느님과 가난한 이웃들과
삼위일체의 구조를 이어오시는 님께서는
큰 염려 않으셔도 언제나 평안하실 것이나이다.
왜냐하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너무나 닮으셨기 때문이나이다.
진정으로 감사드립니다.
많이 어려우실 텐데요?
이렇게 함께 해 주셔서
하느님의 얼굴에 작은 미소를 지어 드리는 착하신 님께
두 손 모아 가족들과 함께 기도드리고 있나이다.
정말 고맙습니다.
2023년 3월
들꽃마을 최영배 비오 신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