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배 신부님 묵상카드
2020년 11월 묵상카드

파리는 겨울이 되면 집안으로 날아듭니다.
결국, 죽임을 당할 텐데 말입니다.

사랑의 님이시여,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의 최대의 행복을
절대자인 신(神)과의 관계가 아니라 재물이라고 생각하나이다.
재물이 있으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고 얻을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나이다.
재물이 풍부하면 권력도 얻을 수 있고 재물이 차고 넘치면
관계하는 모든 사람을 하인으로 부릴 수 있다고도 생각하나이다.

하지만 재물이 제아무리 중심적인 권위를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각자의 인생 안에서 재물로도 해결이 안 되는 일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나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암과 같은 불치병이나이다.
우리 모두는 재물이 많든 적든 상관없이 죽음을 향하여
똑같이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나이다.

인간의 80년의 짧은 인생은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돈과 연관되어 있나이다.
우리는 인생 내내 쉼 없이 돈을 좇으면서 시간과 정열을 낭비하고 있나이다.
그러다 보니 인간 생애에 반드시 겪어나가야 할 의무인 4계절
봄(희망), 여름(고통), 가을(만족), 겨울(시련)을 무시한 채,
한 계절만 돈으로 선택하면서 살아가고 있나이다.
여름에는 에어콘을 틀며 겨울은 따뜻한 난방으로
고통과 시련을 건너뛰고 있나이다.
이는 마치 파리가 추위를 피해 집안으로 날아드는 것처럼
이러한 돈에 의한 선택적 삶은 우리를 영원한 죽음으로 몰고 갈 것이나이다.

우리의 양식인 벼가 봄에 심어져 가을의 수확에 이르기까지
여름의 뜨거운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 흰 쌀밥을 먹을 수 있지 않나이까?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 사회공동체 중,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의 가슴 저린 생애 덕분으로
그나마 행복을 조금이나마 맛보면서 오늘을 지내고 있다 생각하나이다.
이들은 돈이 턱없이 부족하여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선택할 수 없어서
고통과 시련의 삶을 거르지 않고 살아들 가나이다.

오늘날 온 세상이 재물의 싸움으로 무척이나 탁해져 있나이다.
숨이 끊어지고 난 뒤 마지막으로 입은 삼베옷엔 주머니가 없나이다.
이 세상에 가난한 사람들, 생존에 허덕이는 많은 사람들,
깨끗한 물 한 모금 얻기 위하여 무거운 단지를 머리에 얹은 채
먼지투성이의 땅을 매일 수 km 걷고 있는 아프리카의 아이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기형적으로 태어나는 장애인들,
이들의 삶은 본인의 선택과 상관없이 여름과 겨울만을 끝없이 맞이해야 하는
인간공동체 피라미드의 제일 아랫자리를 기꺼이 차지하면서
불평 없이 자신들의 역할에 순응하고 있나이다.

지구가 속해있는 태양계에 수성이나 금성 등
필요 없는 그 별 중 어느 하나만 없어져도 모든 위성들이
태양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과학적 현상이 생기나이다.
마찬가지로 인간공동체 속에 그 어느 역할이 불필요하다 하더라도
그들이 없어지면 인류공동체 전체가 붕괴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하나이다.

인간은 역할의 위아래는 있어도 사람의 위아래는 없나이다.
역할은 반드시 자리바꿈을 하며 사람의 생명과 존귀함은 영원하나이다.
우리는 알아야 하나이다. 인간의 모든 인생에 봄, 여름, 가을, 겨울처럼
시련과 고통의 반복이 오차 없이 똑같이 진행되는지를요...

우리는 고통과 기쁨의 반복된 생활 속에서
본인의 영혼과 존재를 깨끗하게 정화하여
지구와 나를 만든 우주의 무한한 품으로 다시 되돌아가야 하나이다.
주어지는 시련과 고통을 돈으로 메꾸는 사람은 평생 유치한 어린이로 남아
본인의 인생을 완성하지 못한 채, 마지막 호흡을 몰아 내쉬어야 하나이다.

참으로 사랑하는 님이시어,
부디 본인 관계의 모든 문제를 자기 탓으로 돌리시어
참회와 회개의 눈물로 자신의 영혼과 존재의 묵은 때를 씻어 내소서.
참다운 인생은 사회적 성공이 아니라 역할의 완성이나이다.
자신의 존재와 영혼을 완성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인류의 임금이나이다.

많이 울수록 영원히 웃을 수 있나이다.
끝없이 고통스러울수록 영원한 평화를 차지하게 되나이다.
지금 부족하여 물 한 모금 얻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은
나중에 우주 전체를 차지하게 될 것이나이다.
많이 창피당할수록 영원한 명예의 월계관을 머리에 얹을 수 있나이다.

진실하신 님이시어,
우리 모두 지금 부족하고 약하지만
다 함께 영원히 웃을 수 있는 그 날을 기다리면서
어리석게 사는 부유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 주소서.

님께서는 이미 인간공동체의 제일 밑바닥 역할인 저희와
오랜 세월 동안 함께 지내오고 계시나이다.

너무나 고맙고 자랑스러우시나이다.

진심으로 사랑하나이다.

2020년 11월
들꽃마을 최영배(비오)신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