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배 신부님 묵상카드
2020년 4월 묵상카드

하늘은 굴뚝으로 공기를 끌어당기면서
화로속의 장작을 불태웁니다.

사랑의 님이시여,

오늘날의 모든 세상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때문에
불안과 공포, 죽음과 생명,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앞에서
외로움과 고독의 추위에 떨고 있나이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거리를 두고 있으며
서로 사랑하는 사람과도 포옹을 할 수가 없나이다.
나아가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도 그 넓은 국경에
철조망을 치고 있으며 보이지 않는 총성으로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면서 관계의 벽을 더욱 두텁게 쌓고 있나이다.

인간과 인간들이 서로 등을 돌리고 국가와 국가가 서로 단절하면서
인류공동체의 애정과 사랑의 흐름을 차단시키고 있나이다.
인류 모두는 누가 뭐래도 한 인간의 육신처럼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이나이다.

더디게 흐르는 물은 탁해지게 마련이며
흐르지 않는 물은 더 이상 생명체를 살리는 역할을 못하게 되나이다.
너와 내가 만나지 못하고 소통되지 않으며
국가와 국가가 더 이상 왕래할 수 없다면
인류 공동체는 한 육신의 피흐름이 멈추는 것처럼
중환자실의 산소 호흡기를 달아야 하나이다.

마치 난로가 따뜻한 온기로 사람들의 추위를 감싸안아 주듯이
오늘날 우리 인류는 지구 전체의 하늘과 우주 전체를 향한 굴뚝을
크게 올려 섭리와 이치의 신성한 힘과 시급히 연결해야 하나이다.

 

우주와 하늘의 섭리와 힘은 다름 아닌 사랑이나이다.
들꽃들은 입이 없어도 말을 전하고
발이 없어도 멀리까지 향기를 전하나이다.
들꽃은 그 누구에 의해 명을 받거나 지시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본인들을 만들어 주고 키워 주는 자연과 우주의 섭리와
그 힘에 순응할 뿐이나이다.
들꽃들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며 태양과 하늘의 수많은 별들과
바람과 비와 더불어 자유로움을 마음껏 누리고 있나이다.
들꽃들의 자유의지의 포기의 댓가로 하늘과 땅과 벗이 되어
환희의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나이다.

사람과 사람, 국가와 국가들이 서로 흐르지 않아도 강물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계속 겸손의 흐름을 이어가고 있으며,
바다의 물 또한 국경을 뚫고 유유히 지구 전체를 지금도
여행하고 있나이다.

자연과 우주의 모든 존재들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똑같이 인정하며 존중하고 사랑하고 있나이다.
산의 나무와 벌판의 들꽃들은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으며
자연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순환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순응하나이다.

이렇게 순응의 겸허함을 지닌 존재들은 혼자 슬퍼하지도 않고
혼자 웃지도 아니 하나이다.
모두 함께 아파하고 모두 함께 즐거워하나이다.

참으로 겸손하신 님이시어,
왜 만물의 으뜸인 인간만이 홀로 웃고 홀로 즐거워하면서
삶의 욕심을 부리나이까?
왜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애에서 여름과 겨울을 피하려 하나이까?
인류가 한 공동체이면서 아프리카 사람들의 굶주림과
목마름을 왜 외면하나이까?
내 이웃이 아파도 나는 웃어야 하고 내 이웃이 생을 마감해도
나는 계속 살아야만 하나이까?
멸치가 없으면 꽁치도 없고 꽁치가 없으면 참치도 사라지고
참치가 바다에 없으면 권력자인 고래도 존재 할 수 없는데,
왜? 인간만이 수직적 관계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할 줄 모르나이까?

결국 오늘날의 인류전체의 고독과 고통, 불안과 불행은
인간들 스스로가 만들어낸 결과가 아니나이까?
원인이 우리 인류라면 그 결과도 다함께 책임을 공동으로
나누어져야 하나이다.
우리 모두의 지능과 지성, 과학과 의학의 힘만으로
보이지 않는 악성을 이길 수 없나이다.

이제 우리 모두는 땅만 쳐다보고 살아온 지난날의 역사를
참회하면서 우리의 얼굴을 하늘을 향해 들어야 하나이다.
지구상의 모래알보다 한없이 많은 하늘의 하늘 위의 별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어야 하나이다.
왜냐하면 이 우주가 지구를 만들어준 모태이기 때문이나이다.

가난한 저희들과 함께 해 오시는 님께서는
이미 하늘 높이 기다란 굴뚝을 세워 놓고 계시나이다.
하늘의 수많은 태양과 헤아릴 수 없는
별들과 사랑의 소통을 하고 계시나이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님의 따뜻하고
안전한 난로 주변으로 모이라고
크게 외쳐 주시기를 간곡히 청하나이다.

이 세상이 참으로 비참하게 되더라도
하늘의 굴뚝을 연결해 놓으신 님의 인생은
분명 모든 환란에서 안전한 보호를 받으시리라 감히 장담해 보나이다.
이제 우리 모두는 땅을 기어 다니는 전갈의 생활을 버리고
공중의 나는 나비와 새처럼 살아가야 하나이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2020년 4월
들꽃마을 최영배(비오)신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