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배 신부님 묵상카드
2019년 5월 묵상카드

사랑의 님이시여,
사람들은 꽃을 좋아하나이다.
꽃의 아름다움은 향기에 있나이다.
우리는 꽃의 향을 맡기 위해 얼굴을 살포시 꽃잎에 비비곤 하나이다.

향을 내지 않는 꽃들에는 사람이 드물지만,
향내를 진하게 풍기는 꽃들 주변에는
사람들이 함께 앉아 즐거운 시간을 보내나이다.

시들지도 않고 향내도 없는 조화(造花)는 화려하지만,
생명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가까이 가지 않나이다.

꽃들은 피었다가 지고, 피었다가 다시 지고하면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향기를 전하나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은 피었다가 지고, 피었다가 다시 지고하면서
자신만의 향기를 이웃들에게 전하게 되나이다.

꽃이 향을 전하는 것은 바람이 주도하는 것이지 꽃 자신이 아니나이다.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불며 완전한 자유의 영역에서
꽃향기의 향방을 결정짓나이다.
우리 모두에게도 저마다의 개성적인 향기가 있지만,
우리 자신은 피고 지고, 피고 지는 반복을 원치 않으며
조화(造花)처럼 80 평생 피어 있으면서
자신의 향을 사람들에게 과시하고자 하나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시적인 사랑은 개인적인 교만이며 욕심에 불과하나이다.

왜냐하면 향기를 전하는 것은 바람이지
자신의 의지나 노력이 아니기 때문이나이다.

우리의 출생과 죽음이 자신의 주체적인 의지의 울타리 안에 속해있지 않는 것처럼
우리들의 인생살이도 자신의 의지에 따라 조정되거나 변경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깨달아야 하나이다.

바람은 산을 비켜서 골짜기로 몰려 행진하며
강은 산을 돌고 돌아 조금이라도 낮은 곳을 찾아 함께 흐르나이다.

바람과 물의 향방은 스스로는 자유이지만
그 자유로움의 마지막 정착지는 제일 낮은 곳이나이다.
그곳이 바로 바다이며 하늘(우주)이나이다.
바다는 지구의 70%의 공간을 차지하면서 30%의 육지를 보살피고
모든 생명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나이다.
자연과 우주의 이치에 겸허하게 순응하는 것이 진정한 주체적 자유이나이다.
이 우주와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지 않는 자유 행사는 그 결말이 비참하며
반대로 순응한 의지는 그 자유가 그윽한 향기를 풍기는 꽃들처럼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를 만드나이다.

우주의 태양 빛이 지구를 향해 내리비추듯이,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이 달맞이꽃을 피우기 위해 내려앉듯이,
우리 인생도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성공과 좌절
그리고 만족과 부족을 선택하지 않고 함께 받아들이고 소화한다면,
우리의 자유는 바람과 물과 합류하면서
자신만의 인생 곡을 오케스트라로 연주를 할 수 있게 되나이다.

높은 빌딩에 올라서면 아래만 보이지만
아래에서 위를 보면 하늘의 모든 별들을 볼 수 있나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돈과 권력을 향하여
끊임없이 질주하는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와 같나이다.
이렇듯이 위로만 향하는 우리 모두는
결코 아래로 향하는 자연과 우주의 힘을 이길 수 없나이다.
자명한 결론은 비참 그 자체이나이다.
순응이 곧 진정한 자유이나이다. 겸허함이 곧 평화와 행복이나이다.

부디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일을 가지고
씨름하면서 시간과 정열을 낭비하지 마시고
아래로 흐르는 강 위에 내 인생의 돛단배를 띄어 놓고
사랑과 평화의 노래를 부르소서.

부디 내 욕심과 아집의 날개를 접으시고
자유로운 바람에 내 인생의 스카프를 과감히 날려 보내면서
넓은 하늘의 공간에서 별들과 상의하여
자신의 인생의 계획을 마음껏 펼치소서.

만약 그렇게 하리라고 결심을 하는 그 순간부터
님의 인생은 바람처럼 자유롭게 불고 싶을 대로
펴져가는 인생이 될 것이나이다.
참으로 짧은 인생을 살면서
하루라도 빨리 바다에 도달해야 하며
하늘의 별들을 만날 수 있어야 하나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앞날의 변화를 재촉하기보다
오늘의 불완전을 사랑해야 하나이다.
그리고 고민하기보다 고통당함을 받아들여야 하고,
모든 것을 통과시킬 수 있는 빈 파이프를 지니셔야 하나이다.

그렇게 그렇게 세월을 지나다 보면 님의 생의 향기는
자유로운 바람을 따라 모든 사람에게 퍼져나갈 것이나이다.

님의 인생의 아름다운 향내는 이미 하늘이 맡고 있으며,
땅 제일 아래에 사는 가난한 저희들이 코와 입으로 들이키고 있나이다.

참으로 존경하며 감사드립니다.

2019년 5월
들꽃마을 최영배 비오 신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