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배 신부님 묵상카드
2017년 1월 묵상카드

- 단상 2017년 1월 -

가장 못생긴 호박꽃의 열매가 제일 큽니다.

사랑의 님이시여,

육안으로 보면 세상은 아주 불공평한 것 같지만
영혼의 눈으로 보면 세상은 정말 공평하나이다.

높은 산에도 비가 오고
낮은 산에도 비가 오나이다.

대통령 궁에도 햇볕이 비치고
교도소 작은 창문사이로도
태양의 기운이 들어가나이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오늘의 처지에 불만을 가지고
미래에 대해서도 불안하기만 하나이다.

하오나 님이시여,
오늘의 불만은
지나온 세월을 받아들이지 못한 소화불량의 고통이며
미래에 대한 불안은 실천적 사랑의 빈약함에서 오는
두려움이나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적 고통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은
한 지도자의 지난 세월의 소화불량에서 촉발된 힘겨움이며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저를 포함한 종교지도자들의 실천적 희생과 사랑의
부족함에서 기인한 것이나이다.

세상은 참으로 공평하나이다.
따스한 봄이 지나면서 곧바로 여름이 이어지고
풍요의 가을을 누리면서도
어느새 차가운 바람이 온몸을 휘감나이다.
높은 사람은 언젠가 낮은 자리로 내려오고
외제 승용차를 굴리는 사람 또한 언젠가는
자전거를 타고 시장을 보러 다니게 될 것이나이다.

물이 흘러야 썩지 않는 것처럼
역할이 바뀌어야 전체 공동체의 생명이
살아 있을 수 있나이다.

개인이든 공동체이든 생명자체의 존폐는
인간의 의지적 작용이 아니라
자연과 우주의 이치와 힘이 주관하는 것이나이다.

반짝이는 별들의 우주적 작용은 생명을 살리고
보존하는 역할이 그 중심이나이다.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도 아침과 저녁을 바꿀 수 없으며
또한 여름과 가을의 순서를 헝클어 놓을 수 없나이다.

그러하오매 님이시여,
오늘 나의 힘겨움과 내일의 불안감을
먼저 해소해야 하나이다.

너 때문에 내가 불행한 것이 아니라
나 때문에 내가 힘드나이다.

너 때문에 미래가 불안한 것이 아니라
나 때문에 내일이 두렵기만 하나이다.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긴 산길을 혼자 걸으시면 아니되나이까?

잠시라도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속을 프린트하시면 아니되겠나이까?

지금이라도 과거에 남아있는 상처가 있으면
사랑으로 성형시술을 하면 아니되나이까?
지금이라도 다 소화되지 않은 지난날의 일들이
자신을 괴롭히면 사랑의 실천으로 마음의 불순물을
모두 제거하시면 아니되나이까?

호박꽃 같은 오늘의 나의 현실이 마냥 부끄럽고 힘들다 해도
현재의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인생의 가을이 오는 그 먼 훗날
세상에서 가장 큰 열매로 성장할 수 있게 되나이다.

아플 때는 그냥 아파하소서.
힘들 때는 피하지 마시고 있는 그대로 힘들어 하소서.

이러한 아픔과 고통이 땅속 깊이 묻혀있는
나의 인생의 뿌리를 더욱 튼튼하게 만들어 줄 것이나이다.

아무리 현실이 아름답고 행복해도
뿌리가 약하면 쉽게 불행해지고
제 아무리 오늘의 고통과 미래의 불안이 크다 해도
뿌리가 깊고 튼튼하면
내가 원하는 그날에 반드시 현실로 다가서게 되나이다.

어차피 피할 수 없이 겪어야만 하는 여름과 겨울이라면
봄과 가을을 기다리는 침착함과 진실한 성찰의 시간들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나이까?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것이 분명하나이다.
또한 세상에는 로또복권과 같은 행운 또한
갑자기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나이다.

그러하오니 님이시여,
오늘이 가장 소중하나이다.

우리는 오늘 살아 있고 오늘 속에서
과거를 정리하고 미래의 불안을 희망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나이다.

지금 당장 이부자리를 가지런히 정리하시고
가장 가까운 오솔길로 달려가소서.

길을 걸으면서 자신의 영혼과 깊은 대화를 나누소서.

오솔길을 되돌아오면서
가지고 갔던 지팡이를 숲속에 던지시고
얼굴을 가렸던 모자도 벗어서 주머니 속에 넣으소서.

참으로 겸손하신 님이시여,

자신의 호박꽃 같은 어려운 현실의
얼굴을 떳떳이 태양을 향해 돌리시고
열매가 무럭무럭 자랄 수 있도록
비가오거나 날씨가 흐려도 고개를 떨구지 마소서.

자연과 우주의 진리와 힘이
님의 팔짱을 꼭 끼고 있나이다.

언제나 행복한 고통과 즐거운 어려움 속에
머무시기를 간절히 바라나이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2017년 1월
들꽃마을 최영배 비오신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