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배 신부님 묵상카드
2016년 10월 묵상카드

- 단상 2016년 10월 -

화려한 종이장미 보다
호박꽃에 벌들이 모여 듭니다.

사랑의 님이시여,
오늘날의 우리 사회는
돈이 모든 관계의 기준처럼 되어있나이다.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서
천륜의 관계도 쉽게 저버리고 있나이다.

재물이 마치 행복을 보장해 주기라도 하듯
맹목적인 물질우상에 빠져 있나이다.

더 좋은 자동차, 더 넓은 아파트,
재벌기업을 향한 취업욕심, 시기, 질투, 사기, 미움, 증오 등이
오직 물질관계로 빚어지고 커져가고 있나이다.

장미꽃이 화려해도 꿀벌이 달려들지 않듯이
이제 우리 모두에게는 창조적 인간의 향기가
더 이상 나지 않는 레고를 끼워 맞추는 화려함 속에
온전히 빠져 있나이다.

피가 모자라서 죽는 것이 아니라
돌지 않아서 죽는 것처럼
우리사회에 돈이 돌지 않아서 갈증을 느끼는 것이지
부족해서 고통을 겪는 것이
결코 아님을 알아야 하나이다.

재벌들의 금고는 서민들을 위해 결코 열리지 않고
권력자들의 힘은 국민들에게 분산되어 흐르지 않나이다.

지구의 물은 70%로 한정되어 있나이다.
바다의 물이 수증기로 되어 하늘의 구름을 만들고
이 구름들이 온 하늘을 돌아다니면서
빗방울을 떨어뜨리나이다.


산천초목이 목을 적시고
성장의 행복을 키워가나이다.

물은 이들의 생명을 평등하게 모두 살리고
자신의 고향인 바다로 돌아와서
또다시 구름이 될 작업을 진행하고 있나이다.

이렇듯이 자연은 한정된 재원을 돌리고 나누면서
생명과 환희의 합창소리를 사람들에게 들려주나이다.

우리 사회는 하루 빨리 자연으로 돌아가야 하나이다.
자연의 순리에 적응하여 역할은 달라도
모두가 삶의 싱그러운 향내를 맡을 수 있도록
사회 각층의 지도급 인사들부터
나눔과 순환의 이치의 옷을 갈아입어야 하나이다.

만약 우리가 스스로의 독선과 아집,
욕심과 탐욕을 자제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하늘과 땅이 우리를 보호하지 않을 것이나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하늘의 눈물이 땅을 적시고 있으며
땅의 통곡이 우리의 밤잠을 설치게 하고 있나이다.

누가 뭐래도 우주는 지구의 모든 생명체들의
상생과 각자의 완성을 위해 존재해 주고 있나이다.

우주의 섭리가 바다의 이치를 계속 벗어나고 있다면
우주가 자연의 회초리를 들고
우리 모두를 교육 시킬 수밖에 없나이다.

우리는 너무나도 빠른 속도로 혼자가 되어가고 있나이다.

자기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지갑을 꼭 닫은 채 미래의 불안을 달래고 있나이다.

이제 우리 모두의 공동체를 살리는 피는
더 이상 흐르지 않고 멈춰서고 있나이다.

나 자신 스스로는 공동체성의 피를 보유하고 있나이다.
나 자신이 이웃과 하루빨리 소통하지 않으면
재물과 권력도 내 생명을 살려내지 못할 것이나이다.

그러나 막연히 희망 없는 슬픔으로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지 않나이까?
오늘날의 영웅은 바로 님이시나이다.

본인의 피를 뽑아서
가난한 이들에게 전해주는 이웃사랑이
이 사회공동체의 모세혈관에
피를 흘리고 있나이다.

바람이 보이지 않으면서도
우리의 허파를 계속 작동시키듯이
님의 보이지 않는 작은 수혈작업이
이 사회공동체가 영안실로 가고 있는 것을
막아서고 있나이다.

언론기관을 통해 끊임없이 종이 꽃다발을
한 아름 안고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들보다
님께서 부채질하는 그 작은 바람이
간간히 자연의 향기를 맡을 수 있게 하나이다.

우리가 무엇이 부족해서 힘든 것이 아니라
혼자 있어서 고통스러우나이다.

우리가 가족이 없어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이웃이 없어 고독하나이다.

혼자는 있을 수 없나이다.

우주의 모든 별들도 혼자 있지 않고
서로의 연관성을 반드시 지니고 있나이다.

높은 산 위의 소나무도 혼자 있는 것 같아도
태양과 바람과 비와 더불어
공동체성에 뿌리를 내리고 있나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모두 더불어 살고 있는데
왜 우리만이 혼자되기를 고집하나이까?
왜 스스로가 우주 공동체의 무한한 공간에서
미아가 되려고 굳이 애를 쓰고 있나이까?

서로 나누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흐르면서
빨리 중환자실에서 편안한 병동으로
옮겨가야 하지 않겠나이까?

이제 링겔을 꽂은 채 숲속의 조용한 오솔길을 걸으소서.

숲속의 벌레소리도 듣고 따스한 햇볕도 쬐이고
엷은 옷 사이로 파고드는 바람의 마사지도 느끼소서.

한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나의 고귀한 생명과 인생...
포기하지 마시고 절망하지 마소서.
그리고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취하소서.

우리에게는 아직도 님과 같은 보이지 않는
영웅들이 곳곳에 있기 때문이나이다.

우리는 이웃 없이 존재할 수 없나이다.
자존심을 내려놓으소서.

자존심이 생명보다 소중하지 않고
인생보다 그 가치는 아무것도 아니지 않나이까?

이를 악물고 열심히 버티시어
님의 인생을 꼭 만물의 영장으로 완성하소서.

님은 비록 볼품없는 호박꽃이지만
벌들이 날아들고 있나이다.

호박이 크게 자라면
호박죽, 호박전, 호박떡을 풍성히 만들어
길가는 사람 아무에게나 하나씩 건네주소서.

오늘따라 호박전이 참으로 먹고 싶나이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2016년 10월
들꽃마을 최영배 비오신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