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배 신부님 묵상카드
2016년 3월 묵상카드

- 단상 2016년 3월 -

소리 나는 사랑은 칭찬을 받지만
소리 없는 사랑은 존경을 받습니다.

사랑의 님이시여,

사랑은 서로 주고받는 것이나이다.

지구와 우주가 호흡하고
나무가 이산화탄소를 들이 키고 산소를 내뱉으며
꽁치가 멸치를 잡아먹고 고래에게 먹히고
닭이 음식찌꺼기를 먹고 맛있는 계란을 넘겨주는 등의
자연전반의 행위들이 바로 사랑이나이다.

이렇듯이 자연은 인간생활에 쓸모없는 것들을
좋은 것으로 재생산해 인간에게 다시 되돌려 주고 있는데
유독 인간 공동체만이 나쁜 것을 받았을 때
더 나쁜 것으로 되 공격하나이다.

요즈음 사람들은 서로 사랑한다고 말들을 하고 있지만
상대방의 불편함과 어려움을 거부하면서
사랑한다고 자연의 순리에 어긋나는 말을
너무도 당당하게 외치고 있나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나와 다른 상대의 입장을
더 이상 받아들이려 하지 않나이다.

이렇게 너와 내가 더 이상 관계하지 않고
호흡하려 들지 않고 인정하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이어져 있는
심장 모니터의 그래프는
더 이상 파도의 곡선을 표시해 주지 않을 것이나이다.

과일 나무가 썩은 거름을 먹고
풍성한 열매를 사람들에게 되돌려 주는 축포는
밤하늘을 계속 쳐다보아도 고개만 아플 뿐이나이다.

아이들은 말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어른들은 말을 머리에 세기나이다.
자연의 순리와 인생의 이치는
머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고
가슴으로만 풀어갈 수 있나이다.

머리는 지극히 좁은 영역에 갇혀 있지만
가슴은 한없는 공간으로 옳고 그름과 좋은 것과 싫은 것
더러운 것과 깨끗한 것, 죄와 사랑
모두를 받아들일 수 있나이다.

머리는 세상과 호흡을 하고
가슴은 세상을 포함한 우주전체와 소통을 하나이다.

지상에서 보면 서로의 단면만 보면서 싸움이 일어나지만
하늘에서 보면 서로의 존재전체를 보면서
사랑할 수 있게 되나이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관계하려 하지 않나이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소통하려들지 않나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계속 달콤한 말들을 쏟아내고 있나이다.

국가의 지도자들은 국민을 사랑한다고
스스럼없이 강하게 말하나이다.

종교 지도자들은 신자들을 진실로 사랑한다고
무게 있게 마이크를 통하여 주일마다 전달하고 있나이다.

대기업은 중소기업과 협력한다고
국민들에게 먹을거리를 마련하느라
너무나 열심히 뛰고 있다고 자랑하고 있나이다.

하지만 우리 국민 중 그 누구도
이제는 그러한 사랑의 소리에
박수를 여기저기에서
부분적으로는 칠 수 있을지 몰라도
더 이상 존경의 가슴은 뛰지 않나이다.

사랑의 소리는 커져만 가는데
우리 모두의 가슴은 자꾸만 쪼그라들고 있나이다.
열매를 보면 그 나무를 알 수 있듯이
우리의 아픔이 이다지도 크고 큰데도
지도자들은 계속 사랑한다고 수다를 떨고 있나이다.

관계는 숙명적인 삶의 이치이나이다.

소통은 심장을 힘차게 뛰게 하는
절대적인 에너지이나이다.

사랑은 너와 나를 하나로 묶어주는
유일함과 고귀함 그 이상의 모든 것이나이다.

이제 우리 모두는 더 이상 힘이 없나이다.
관계와 소통의 부재 때문에
하나의 풍선을 불 여력도 없는 듯 하나이다.

이제 희망도 없고 릴레이 바통을 넘겨줄
다음 주자도 보이질 않나이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관계가 단절된 지 오래고
남한과 북한이 호흡을 끊은 지도
참으로 긴 세월이 흐르고 있나이다.

부부가 서로 등을 돌리고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금전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서민과 부자의 소통이 막혀 있나이다.

소통의 님이시여!
숨쉬기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이제야 알겠나이다.
소통하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지금에서야 깨닫게 되나이다.

말과 소리로써 더 이상 인간 공동체를
자연의 순리에 포함시킬 수 없다는 것을
오늘에야 눈치 채고 있나이다.

이러한 절망감 속에서도 우리는 같이 살아야 하나이다.
팔과 다리에 힘이 없어도
지팡이를 짚고 반드시 일어서야 하나이다.

관계와 소통만이 힘을 만들고
희망의 눈빛을 반짝이게 할 수 있나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기도해야 하나이다.

우리 모두를 위해 희생해 줄 지도자가
멀지 않은 날에 꼭 나타나 주기를…….

하지만 우리의 간절한 두 손 모음이 수포로 돌아갈 것을
우리는 은연중에 느끼고 있나이다.

그래서 이름도 없고 명성도 없고 재물도 없고 권력도 없는
우리들이 힘을 모으면 가능해지지 않겠나이까?

우리에게 남은 희망은 우리들 자신뿐이나이다.

님께서는 가난한이들과 소통을 통하여
오늘도 대중이 쓸 에너지를 생산하고 계시나이다.

참으로 사랑합니다.
진정으로 고맙습니다.

2016년 3월
들꽃마을 최영배(비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