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상 2015년 6월 -
물고기가 바다에 살지만
스스로는 짜지 않습니다.
사랑의 님이시여,
인간이 사는 이 세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천지창조부터 종말 때까지……
선과악의 이중성속에 머무르나이다.
누구나 암세포를 가지고 태어나듯이 모든 인간 또한
악성을 지니고 출생하게 되나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중성을 적절하게 잘 활용하여
사회적 성공을 달성시키나이다.
겉으로는 선을 표현하면서도
안으로는 악을 기획하고
얼굴은 맑은 미소를 띠면서도 심장의 고동소리는
커지기만 하나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중성을 철저하게 감추기 위해서
윤리도덕의 화려한 옷으로 치장하고
신앙의 브로치를 달고 다니나이다.
직책의 고하를 막론하고 이러한 이중성은
모든 사람들이 철저히 활용하는 본성의 영역이나이다.
따라서 그 누가 화려한 말을 이어가더라도
그 사람의 말을 듣지 말고
그 사람의 삶을 봐야 하나이다.
하루 이틀 내리는 눈은 아름답지만
사흘이상 내리는 눈은 지겹지 않나이까?
우리는 이러한 세상 이중성의 한복판에 서서
심한 갈등과 고민을 이어가나이다.
비록 사회적 역할은 부족하지만
선으로 단순하게 살수 없을까? 하고
깊은 고민에 빠지기도 하나이다.
이럴 때마다 사람들은 나를 두고
참으로 어리석다고 비판하기도 하나이다.
바보 같다고도 하나이다.
하지만 인생의 가치와 완성은 본성적인 영역을 벗어나
의지적인 영역으로 진입할 때 달성되나이다.
마치 우주를 향하는 로켓이
지구의 대기권을 통과할 때 가장 힘든 것처럼
동물적인 영역에서 참으로 인간적인 장르로
진입하기가 가장 고통스럽나이다.
인간의 사회적 공동체의 역할은
그 어느 하찮은 존재가 멸종하면
존재모두가 사라지는 동식물의 생태계처럼
우리 각자의 역할 또한 등급은 있을 수 있지만
존재의 가치와 그 중요성은 모두 평등하나이다.
이는 또한 우리 몸의 어느 하잘 것 없는 장기하나라도 고장 나면
죽음을 맞이하는 우리의 육신과 똑같나이다.
따라서 나의 인생은 성공이 아니라
완성이어야 하나이다.
인생의 완성은 선과 악의 이중성을
선의 단순성으로 바꾸어 감으로써 도달되나이다.
참으로 진정한 단순은 선과악의 이중성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 앞에서도 선을 택할 수 있는 용기이나이다.
암환자의 고통도 암세포에 의해
생명세포가 당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나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삶의 고통 또한
악성이 선성을 공격할 때 일어나는 현상임을 알아야 하나이다.
우리의 삶이 지치고 힘들고 아플 때
이를 옳고 그름과 윤리 도덕적으로 풀지 마시고
내 안에서 활개치고 있는 악성의 전쟁임을 인식하고
자신의 악성에 대한 스스로의 원망과 뉘우침을 통하여
선에 대한 공격을 막아서야 하나이다.
나의 고통과 아픔은 외부적인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지니고 태어났던 나의 악성임을
신속하게 확인하고 인정함으로써
마음의 평화와 안식을 누릴 수가 있나이다.
참으로 사랑하는 님이시여,
세상 사람들이 보이는 1% 세계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을 때
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99%의 내면의 전쟁에
충실하셔야 하나이다.
마치 풍선을 크게 불었을 때의 모습을
자신의 존재로 착각하는 어리석은 1% 세상에 속하지 마시고
영원히 터뜨려지지 않는 내면의 풍선을 큰 숨으로 불어가소서.
세상의 풍선은 언젠가는 오르다가 떨어지지만
마음의 풍선을 뜨지도 않고 가라앉지도 않나이다.
언제나 어디서나 그 모습 그 모양대로 영원하나이다.
알라스카의 빙산처럼 일부만 세상에 드러내시고
나머지 존재의 대부분은 마음 안에 가두소서.
마음의 크기는 우주를 다 담을 수 있지만
머리의 크기는 세상의 일부분만 얻을 수 있나이다.
물고기가 바다에 살아도 짜지 않는 것처럼
님의 존재 또한 비록 세상 속에 머물러있더라도
하늘의 향기를 품었으면 하나이다.
찔레꽃 한 송이가 온 집안을 가득 채우듯이
님의 인생의 하늘 공기가
세상의 이중적인 대기 오염을 맑게 씻어 주기를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세상 사람들은 보이는 1%에 매달리지만
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99% 마음 안에
머무르고 계시나이다.
님이 계시기에 저도 기쁘고
님이 계시기에 우리가 즐겁나이다.
고맙습니다.
2015년 6월 들꽃마을 최영배(비오)신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