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상 2015년 1월 -
암세포는 육신을 망치지만
자존심은 존재를 망칩니다.
사랑의 님이시여,
암 세포가 한 개라면 생명세포는
10만개가 우리 육을 구성하고 있나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악성이 탁구공 크기라면
우리 각자의 존재는 우주의 크기와 같나이다.
숫자상으로 보면 싸움의 적수가
계산적으로 불가능 할 것 같으나
현실적으로는 수많은 사람이
암으로 생을 마감하고 있나이다.
마찬가지로 나의 악성과 존재의 영역은
경쟁 자체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오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자존심의 공격적인 삶 때문에
육신적 죽음 후에도 손가락 짓을 계속 받으면서
무덤 속에서 살아들 가나이다.
암세포와 자존심은 성질상 비슷한 특성을 지니고 있나이다.
암세포는 받기만 하고 주지는 않으며
자존심은 너가 없이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는 불통의 아집이나이다.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소통과 교환의 존재이나이다.
동물과 식물의 세계는 먹이사슬을 통하여
자신들의 생명을 진화시켜가고 있으며
사람은 계층과 역할간의 상호 흐름을 통하여
자신의 인생을 완성시켜 가나이다.
하오나 동물과 식물들은 상호교환을 통하여
생명과 평화를 지켜나가고 있지만
만물의 영장인 사람들은 소통과 호흡의 부재로
불행과 절망의 산을 숨 가쁘게 오르고 있나이다.
암세포가 발병되기 이전에는 확인되지 않듯이
나의 자존심도 불행한 결과를 손에 쥐기 전에는
그것의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하나이다.
생명과 죽음의 갈림길은 호흡의 유무에 따라
결정되나이다.
호흡은 모든 생명의 권리이자 의무이나이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조건과 이유
그리고 질서와 평화 그리고 선과 악
나아가 사랑보다도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호흡이며 교환이며 소통이나이다.
우리 사회는 이러한 절대적인 근본 권리인
소통의 상호 박탈 때문에 암으로 병들어 있으며
서로간의 불인정 때문에 이혼, 자살, 정신질환 등이
그 어떤 바이러스보다도 강하게
너와 나를 공격하고 있나이다.
오늘날의 우리 사회는 옆으로는 심한 경쟁과
질투의 전쟁을 치루고 있으며
위와 아래는 호흡이 곤란할 만큼 소통의 탯줄이 끊겨 있나이다.
우리는 긴장과 불안의 공기를 계속들이 쉬면서
그래도 목표와 희망의 비포장도로를
계속 걸어가고 있나이다.
‘누가 우리를 이러한 절망적 상황에서 건져 주지 않을까?’하고
애타게 기다리고 있지만 종교, 정치, 재벌기업
그 누구에게도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나이다.
어둠 속에서 촛불하나가 큰 역할을 하는 것처럼
좋은 음식재료에 조금의 소금이 오감을 만족시키는 것처럼
우리 모두의 갈등과 긴장의 해소는
사회를 이끄는 그 어느 위인들의
이중적인 웃음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힘없고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듯한
대중들의 소박한 실천적 행동으로 이루어진다는 진실을
인류의 역사를 통해서 익혀오고 있나이다.
이제 당신과 내가 나서야 할 때이나이다.
보이는 하늘의 별보다 보이지 않는 수많은 별들이
우주를 움직이는 것처럼
눈에 띄지도 않고 손으로 만져지지도 않는
무명의 너와 나의 작은 소통과 교환과 사랑이
우리 모두의 확실한 희망임을 재차 확인하고 있나이다.
호흡조차 곤란한 사람을 수술대위에 눕히지 않듯이
먼저 안정과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하나이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먼저 인정 하소서.
고민하기보다 고통당함을 사랑하소서.
앞날의 변화를 재촉하기보다 오늘의 불완전을 사랑하소서.
왜냐하면 사랑은 바로 생명의 산소호흡기와 같기 때문이나이다.
님께서 먼저 저희들에게 산소호흡기를 달아 주셨나이다.
님의 자존심의 포기로 벌써 한 생명을 등에 업으셨고
우주를 이미 가슴에 품으셨나이다.
인생은 성공이 아니라 완성이나이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2015년 1월 들꽃마을 최영배(비오) 신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