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상 2013년 5월 -
꽃이 핀다고 모두 열매가 되지 않듯이
인생의 구상도 모두 완성되지는 않습니다.
사랑의 님이시여,
과수원 나무들의 봄날의 꽃들은 셀 수 없이 많이 피나이다.
하지만 그들 중 극히 일부만이 열매로 바뀌어가고
나머지는 모두 땅에 떨어지나이다.
그 꽃들이 모두 열매로 바뀐다면
정작 먹을 수 있는 과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나이다.
한 평생을 살다보면 여러 가지 꽃들이
내 인생의 가지에 피게 되나이다.
우리는 그 꽃들을 보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꽃들의 성과를 만들어가고 있나이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이 꽃도 떨어지고
저 꽃도 떨어지는 안타까움을 맛보게 되나이다.
권력의 꽃도 떨어지고 재물의 꽃도 사라지며
명예의 꽃도 바람에 힘없이 날려 가나이다.
어차피 찬바람이 불면 하얀 눈밭위에 서 있어야 할 나의 인생…….
출생과 죽음을 자신의 휴대폰에 항상 입력시켜 놓으면 아니 되나이까?
처음과 마지막까지의 날들을 오늘 하루의 일기장에
함께 기록해 놓으면 아니 되나이까?
이쪽으로 뛰었다가 다시 돌아오고
저 쪽으로 달려갔다가 또다시 제 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나의 인생의 소중한 열매는 바로 사랑이 아니더이까?
스티븐 호킹 박사가 무한한 이 우주의 유일한 법칙은 하나라고 말했듯이
모든 존재의 동일한 이치와 힘은 사랑이나이다.
무릇 인생이란 모든 관계를 통하여 자기완성을 이루어야 할
천부적인 의무와 책임이 주어져 있나이다.
선택적이고 기호적인 인간관계를 고집한 사람의 장례식은
초라하기만 할 것이고 주어진 관계를 모두 인정하고
소화한 사람의 임종의 마지막 호흡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계속 그 숨을 이어가게 될 것이나이다.
우주가 지구를 만들었고 지구가 나의 생명을 만들었나이다.
우주에서 시작하여 80년의 짧은 인생을 마치고
다시 우주의 품으로 되돌아가야 하나이다.
내가 목마르다 하여 흐르는 강물을 다 마실 수 없듯이
만들어진 나의 생명과 인생이 만들어 준 우주를 포함할 수는 없나이다.
내가 강물에 뛰어들어 강과 하나가 되듯이
우주의 이치와 나의 존재를 일치시켜 진정한 하나가 되어야 하나이다.
사람의 인생은 짐승과 달라서 무한한 우주와 하나 되어
시 공간이 없는 영원한 현재의 오늘을 살아야 할
숭고하고 고귀한 그 무엇이나이다.
바쁜 스케줄을 잠시 접어 두시고 자신의 현재의 모습을
조용한 호수위에 비추어 보소서.
호수가 조용하면 산과 하늘을 깊은 물속에 품어 내듯이
내가 여러 가지 세상 욕심으로 출렁이지 않으면
우주의 이치인 사랑이 영혼의 시야에 들어오게 되나이다.
내 존재의 출렁임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자존심이나이다.
자존심은 스스로 너 없이 존재할 수 있다는 극도의 오만함이나이다.
“나는 나다”라는 당연성과 일방적인 독단성
선과 사랑을 이용한 거침없는 주체영역의 침범
단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옳고 그름의 자기 판단과 주장들이
가까운 이웃들의 생명의 세포들을 하나둘씩 죽이고 있다는 사실을
언제 깨달을 수 있겠나이까?
우리는 관계 속에서 영원한 죽음인 자신의 자존심을
끝없이 부셔가야만 하나이다.
우리가 지구에 남아 있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아직도 느긋하게 TV속의 드라마 내용에 빠져들고 계시나이까?
나를 영원히 살게 하고 우주와 일치시켜 줄
이웃이 바로 내 옆에 항상 있지 않나이까?
부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먼 산을 보지 마시고
내 옆에 있는 바로 그 사람의 손을 잡아주소서.
옳고 그름과 선악을 넘어서서 사랑으로 하나 되소서.
내가 없는 그 자리에서 미운사람 좋은 사람들이 함께 뛰어
놀 수 있도록 영혼의 대문을 잠그지 마소서.
이제 다 와가나이다.
설날을 몇 번만 더 지나면 영원한 시간과 무한한 공간에서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실 수 있을 것이나이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2013년 5월 들꽃마을 최영배(비오)신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