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2012년 10월)
개천이 강이 되면 송사리가 떠나고
강이 개천이 되면 잉어가 떠납니다.
사랑의 님이시여,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을 만나게 되나이다.
우리는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을 만나지 않고는
삶을 이어갈 수 없나이다.
왜냐하면 관계는 공기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나이다.
우리는 더 높은 자리, 더 많은 재물
더 높은 명예, 더 많은 힘을 차지하기 위해
본인에게 유익한 사람을 만날 목적으로
저쪽으로 달려갔다가 이쪽으로 쫓아오나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인생의 승패는
누가 누구를 만나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듯 하나이다.
하오나 님이시여,
현실은 나의 생각과 크게 다르게 전개되는 것이
일상의 체험이나이다.
기대를 걸었던 사람에게 외면당하고
인생을 걸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며
심지어 자신의 혈육인 자식들에게까지
버림을 받는 일이 흔히 일어나고 있나이다.
참으로 사랑하는 님이시여,
이제 그 누구를 믿고 의지하며 선택하는 일은
그만두셨으면 하나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은 선과 악의 이중적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선과 악을 자기식대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나이다.
그래서 사람을 쫓지 말고 사람을 몰려들게 해야 하나이다.
내가 얕으면 송사리 같은 작은 사람들만 우글거리고
내가 깊으면 애써 멀리하지 않아도
이중적인 사람들은 나의 주변에서 사라지게 되나이다.
그래서 사람을 향한 나의 안목을
자신의 삶의 중심으로 옮겨 놓아야 하나이다.
내가 참으로 깊은 사람인지 아니면
나 자신 또한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이중적인 사람인지를
진실하고 정직하게 숙고해야 하나이다.
내가 참으로 깊으면 잉어 같은 큰 사람들이 모여와
나의 인생을 깊고 크게 만들어 줄 것이나이다.
인생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나이다.
만들어 가는 인생은 부서지기 마련이고
만들어지는 인생은 결코 꺾이는 법이 없나이다.
만들어 가는 인생은 욕심에서 나오고
만들어지는 인생은 겸손에서 나오나이다.
만들어 가는 인생은 이중성에서 출발하고
만들어지는 인생은 단순성으로 채워지나이다.
만들어 가는 인생은 자신만을 위해서 달려가고
만들어 지는 인생은 너와 나의 공동체를 위해서 노력하나이다.
만들어 가는 인생은 이기심을 가지고 계획을 작성하고
만들어 지는 인생은 사랑을 가지고
미래의 설계를 구상하나이다.
참으로 겸손하신 님이시여,
이중성과 이기심이 가득한 현 세상에서
불안과 긴장의 감옥 문을 여시고 나와
한적한 오솔길을 홀로 걸으소서.
만나고 또 만나는 시간을 줄이시어 혼자만의
고요한 시간을 만드소서.
그러면 하늘의 반짝이는 별이 보이고
나무들의 새싹이 경이로우며
벌레들의 작은 울음소리가 들릴 것이나이다.
그러다보면 나 스스로가 자신의 깊은 곳으로
어느새 들어앉아 있게 됨을 발견하게 되나이다.
과거에 대한 반성과 뉘우침은
개천을 강물로 바꾸는 숭고한 노동이며
나 자신의 눈물과 뼈아픈 고통은
잉어들의 먹잇감으로 쓰이게 되나이다.
100명의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한 시간의 명상이 더 소중하나이다.
이중적인 사람 100명을 만나는 것보다
단순한 사람 한 명을 만나는 것이 더 값지나이다.
지혜롭고 진실한 현인을 찾아
따뜻한 녹차한잔을 마시면서
자신의 인생검진을 한 번 받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되나이다.
부디 자신의 자아(自我)를 깊고 넓게 가꾸시어
스스로가 원하는 인생의 목적을 쉽고 온전하게 달성하소서.
님께서는 꼭 그렇게 하시리라 믿나이다.
고맙습니다.
- 2012년 10월 들꽃마을 최영배 비오 신부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