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상 2012년 2월 -
죄는 심리적인 불안이지만
사랑은 존재적인 불안입니다.
사랑의 님이시여,
사람들은 서로간의 죄를 가지고
나쁜 사람이니 착한 사람이니 하면서
서로를 비난하나이다.
사람들은 서로간의 죄를 두고
관계가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나이다.
사람들은 잘못이 드러난 사람을 죄인이라 일컫고
죄가 드러나지 않은 사람을 의인이라 칭송하나이다.
그러나 죄는 들키고 들키지 않은 차이 뿐이지
우리 모두의 몸속에 암세포가 있는 것처럼
죄의 출발점인 악성을 똑같이 지니고 있나이다.
죄는 우리 몸속의 암세포처럼
우리 존재 전체의 극히 작은 부분이기 때문에
작은 것을 가지고 전체를 평가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나이다.
우리 모두는 죄인임에 분명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인 중에 의인도 있고 악인도 있나이다.
진정한 의인은 선과 악의 이중성을 활용하지 않으며
반면 악인은 선과 악의 이중성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순간순간 이용하나이다.
극소량의 암세포가 거대한 정상세포를 공격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듯이 존재의 부분인 악성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사람의 말로는
죽음보다 더 비참할 것이나이다.
우리가 암세포를 모두 지니고 출생하듯이
죄의 근원인 악성 또한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서로의 죄를 가지고 공격하고 비판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문제의 초점을 맞추어야 하나이다.
선과 악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드러내는 사람은 단순한 사람이고
선과 악의 이중성을 자기 인생에 이용하는 사람은
이중적 존재로 보아야 하나이다.
진실로 단순하신 님이시여,
단순한 사람은 비록 그 죄가 드러났다 하더라도 끌어 앉으시고
이중적인 사람은 끝까지 자신의 죄를 숨긴다 하더라도
멀리하셔야 하나이다.
단순한 사람은 자신의 죄를 쉽게 인정하고 뉘우치지만
이중적인 사람은 죄가 드러나기 전까지
태연하게 의인으로 행세하나이다.
이러한 이중적인 사람과의 깊은 관계는
암세포의 왕성한 활동이 정상세포를 다 죽이는 것처럼
자신의 인생 또한 좌절과 고통의 나락으로 빠뜨리나이다.
그래서 님이시여,
서로간의 똑같은 죄를 두고 서로에게 씨름하지 마시고
그 사람의 사랑을 보고 그 사람과 관계의 정도를 결정해야 하나이다.
열매를 보아야 그 나무를 알 수 있듯이
그 사람의 사랑을 보고 그 사람을 평가 하는 것이
관계의 실패를 맛보지 않는 지혜이나이다.
우리 모두가 하루도 빠짐없이 이렇게 저렇게
불안한 것은 죄가 아니라 사랑 때문에 그러하나이다.
자신과 타인의 죄에 극도로 예민한 사람은
암세포의 활동을 강화시켜 결국 죽음에로 이르게 되나이다.
진정으로 죄의 불안을 해소시켜 주는 것은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행함으로써 달성될 수 있나이다.
사랑은 우리 자신의 몸뿐만 아니라
지구와 우주 모두를 같은 이치로 지배하고 있는
살아 있는 힘이며 존재 그 자체이나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떠한 사람 앞에서도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사랑으로 분석하고 결론은 내어
우주의 무한한 힘으로써 자신의 문제들을
서서히 풀어가야 하나이다.
어떠한 죄든 그 죄는 따지고 벌할 권한이 서로에게 없으며
그 것은 그 사람과 절대자의 고유한 몫이지
나 자신의 영역은 분명 아니나이다.
자연과 우주는 모든 생명체가 공존할 수 있도록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섭리하고 있나이다.
그 사람의 이중성이 또 다른 사람의 생존을 위협할 때
공격하는 존재가 반드시 망하는 모습을
우리는 지켜볼 수 있나이다.
나와 너 그리고 세상을 굴러가는 데로
내버려 두시고 그냥 지켜봐 주소서.
그냥 그 사람의 행위와 관계없이
사랑으로 일관 하소서.
그렇게 그렇게 세월을 넘기다보면
영원히 변하지 않고 사라지질 않을
평화와 행복이 님의 이부자리에
깃들어 있을 것이나이다.
작은 것은 작은 사람들이 가지고 놀게 내버려 두시고
큰 사람답게 우주의 이치와 힘인 사랑으로 짧은 인생을 즐기소서.
참으로 고맙습니다.
2012년 2월 들꽃마을 최영배(비오) 신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