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배 신부님 묵상카드
2011년 7월 묵상카드

- 단상 (2011년 7월) -

심장모니터기가 수평선을 그으면
죽은 사람으로 판정받듯이
인생의 모니터도 굴곡의 사이클이 없으면
삶의 의미와 가치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사랑의 님이시여,
우리는 자신의 인생이 80년 내내 평탄하기만을 바라나이다.
우리는 이러한 쭉 뻗은 평탄한 인생길을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나이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는 그 길은 조금만 가면 굽어서 이어지고
목적지에 가까울수록 엑셀레다와 브레이크를
반복해서 바꾸어 밟아야 하는
답답함과 짜증스러움을 경험하게 되나이다.

이 세상의 모든 길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직선으로
쭉 뻗은 곳이 없듯이 우리의 人生 길 또한 그러하나이다.

그런 줄 알면서도 우리는 있지도 않은 그 길을 찾아
정신없이 이리저리 뛰어 다니고 있나이다.

소나무는 푸르지만 다른 나무들처럼 똑 같이
낙엽이 지고 새싹이 돋나이다.

어느 겨울날에 키 큰 소나무 아래에
노란 갈피가 수북이 쌓여 있는 것을 보게 되고
어느 봄날에는 송홧가루가 내 책상위에
날아와 있는 것을 만지게 되나이다.

우리는 늘 푸른 소나무처럼 살고 싶어 하지만
나무들이 그러하듯 우리의 모든 人生 희노애락의
양은 똑 같이 주어지나이다.

심장모니터기가 수평선을 그으면
죽은 사람으로 판정을 내리면서도
우리는 마치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처럼
인생의 굴곡을 거부하면서 마냥 평탄한
길만을 고집하나이다.

진정으로 나만 제일 불행한 사람처럼
나의 인생만 그지없이 고통스러운 것처럼
자신을 비판하고 확대하면서
충혈 된 눈으로 내일의 태양을 맞이하고 있나이다.


참으로 사랑하는 님이시여,
내가 힘든 것만큼 다른 사람도 힘들다는 것을 깨우치소서.
내가 아픈 만큼 저 사람도 그 만큼 아프다는 것을 꼭 확인하소서.

지구의 낮과 밤이 함께 있고 계절마다 피고 지는 꽃이 따로 있듯이
너와 내가 동시에 웃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우는 일도 진정으로 없지 않나이까?

지금 웃는 사람은 지난날에 많이 울었고
지금 우는 사람은 지난날에 많이 웃었나이다.

지난날에도 웃었고 지금도 웃는 사람은
남은 인생 내내 한 없이 울어야 하나이다.

이것이 바로 모든 인생에 주어지는 평등하고 정의로운 숙제이기에
숙제부터 해 놓고 동네아이들처럼 즐겁게 뛰어 놀아야 하나이다.

오늘 주어진 희노애락을 내일로 미루지 말고
충분히 소화시켜야 하나이다.

하루에 두 시간만 아파하시고 나머지 시간은
웃으셔도 되나이다.

자기 전에 두 시간만 힘들어 하시고
다음날은 종일 쉬셔도 되나이다.

울어 보지도 않은 사람은 웃을 자격도 없으며
고통의 시간이 없었던 사람은 행복한 시간도 즐길 줄 모르나이다.

무엇이 그다지도 아프고 힘드나이까?
무엇 때문에 밥상을 멀리하고 창문도 없는 벽만 쳐다보고 계시나이까?

우리가 숙제를 오늘까지 미루지 않고 제때에 다하였다면
오늘의 고통은 사실 충분히 소화시킬 수 있나이다.

지난 40년의 과거를 용서와 인정으로 내려놓으시고
내일의 불안을 하늘에 맡기소서.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은 분명 오늘 하루뿐이지 않나이까?
지난날의 잘못이 아무리 크다 하여도 오늘 하루 동안 용서할 수 있으며
다가올 날의 미래가 제 아무리 불안하다 하여도
오늘 하루의 기도로써 충분히 지울 수가 있나이다.

나무는 가지가 부러져도 계속 성장하는데
하물며 사람이야 하루와도 같은 지난날의
아픔들을 치료할 수 없겠나이까?


큰 파도의 출렁거림에 리듬을 맞추어
연약한 돛단배가 항구에 다다르듯이
우리 인생의 크고 작은 굴곡의 사이클에 잘 적응하여
등대의 반짝이는 눈망울로 노년의 얼굴을 장식하소서.

인생은 누가 뭐래도 높고 낮은 사이클이나이다.

올라갔다 내려 갔다하면서, 웃으면서 울면서 하다가
예금통장에서 대출통장으로 바뀌면서
건강하다 아프다가 하면서
존경을 받다가 비난을 받다가 하면서도
늘 푸른 소나무처럼 얼굴에 푸르름을 잊지 마소서.

그렇게 그렇게 살다보면
님의 인생의 소나무를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작은 정원에 심어 놓을 것이나이다.

님이시여,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하셨나이다.
오늘 하루만큼은 다 내려놓으시고
저와 함께 이 짧은 글로 따뜻한 대화를 나누시지 않으시겠나이까?

참으로 고맙습니다.

- 2011년 7월 들꽃마을 최영배(비오) 신부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