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상 85 (12월) -
소나무가 낙엽이 지듯이
모든 사람의 인생도 낙엽이 집니다.
사랑의 님이시여,
소나무는 사철 푸름을 자랑하나이다.
낙엽이 지는 다른 나무들은 소나무의 자태를
몹시 부러워하나이다.
하지만 가만히 관찰해 보면 소나무 역시 낙엽이 지나이다.
소나무 밑에 갈비가 수북이 쌓이는 것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나이다.
소나무도 봄이 되면 새싹이 돋나이다.
같은 가지에 묵은 잎과 새싹이 동시에 자랄 수는 없나이다.
그래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소나무는 낙엽을 떨어뜨리고 있나이다.
그렇지만 소나무는 사철 푸르나이다.
소나무는 사계절 모두 행복하나이다.
우리는 소나무처럼 인생을 살았으면 싶나이다.
웃고 울고 아프고 힘들고 기쁘고 슬퍼하면서
저마다의 인생을 임종 때 까지 이어 가나이다.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차피 주어지는 아픔과 고통이라면
분명 선택의 여지가 없나이다.
이러한 삶의 과정과 구조를 우리는 너무나 뻔히 알고 있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희노애락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시시각각 자신의 상태를 쉽게 드러내나이다.
너무 힘들어 못살겠어!
너무 아파 죽을 지경이야!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아!
희망이 전혀 없는 세상 살아서 무얼 하겠나! 하면서
은근히 자신의 삶속에 타인의 인생을 강제로 끌어들이고 있나이다.
물이 얕은 개울이 소리가 요란하듯이
가슴이 얕은 인생들이 온갖 가지 불평과 불만으로
이웃을 어지럽게 하고 한없이 괴롭게 만드나이다.
오늘의 현실은 분명 자신이 걸어온 세월의 결과임에 분명한데도
또 다른 사람과의 공동책임으로 확대해석하여
책임과 의무를 떠넘기고 있나이다.
여름의 뜨거운 뙤약볕과 목마른 가뭄
폭풍과 홍수를 온전히 견디어온 나무들에게
겨울의 긴 안식이 주어지듯이
주어진 자신의 희노애락을 겸순되어 수용한 인생만이
따뜻한 난로 옆에서 겨울의 오랜 휴식과 평화를
누릴 자격이 있나이다.
참으로 사랑하는 님이시여,
사람들 앞에서는 웃고 혼자 있을 때는 우소서.
사람들 있는 곳에서는 샴페인을 마시고
혼자 있을 때는 독한 소주를 마시소서.
사람들 앞에서는 옷을 정갈하게 차려입으시고
잠자리에 들 때에는 발도 씻지 말고 이부자리를 펴소서.
사람들 앞에서는 건강하고 씩씩하게 걸으시고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큰 대자로 등을 마룻바닥에 누이소서.
내가 힘들고 아픈 것을 다른 사람들이 다 보고 있나이다.
내가 힘들고 아픈 것을 다른 사람들이 이미 다 알고 있나이다.
이러한 나의 인생을 두고 사람들은 낙엽이 지지 않는
소나무처럼 사랑과 행복을 느끼나이다.
소나무 숲의 공기가 암환자들에게 최고의 약이라 하나이다.
인생의 어려움과 고통을 드러내지 않는 님의 삶의 숲 속에서
병이 든 인생들이 님의 공기를 마시러 몰려들 것이나이다.
부디 힘을 내소서.
부디 용기를 잃지 마소서.
님 곁에는 가난한 저희들의 기도가 있지 않나이까?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2010년 12월 들꽃마을 최영배(비오) 신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