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상 84 (11월)-
나무의 단풍은 참으로 아름다운데
노인의 얼굴은 왜 그렇지 못한가?
사랑의 님이시여,
나무의 단풍은 참으로 곱고 아름답나이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나무의 색깔은
눈부시도록 찬란하나이다.
겨울의 긴 침묵과 고통으로 들어가고 있는
나무의 자세는 의연하면서도 당당하나이다.
나무는 선택하지 않나이다.
여름의 뜨거움과 긴 장마 그리고 타는 듯한 가뭄을
짜증내지 않고 묵묵히 받아들이나이다.
한 번 뿌리가 내리면 수명이 다할 때 까지
이리저리 옮겨 다니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항상 그 자리에 그대로 있나이다.
선택하지 않았던 댓가가 바로 어느 임금보다도
더 값진 단풍의 옷이나이다.
하오나 님이시여,
사람의 인생은 끝없는 선택의 연속이나이다.
이것을 할까, 저것을 할까
이 옷을 입을까, 저 옷을 입을까
이것을 먹을까, 저것을 먹을까
저 사람을 만날까, 이 사람을 만날까
이리로 갈까, 저리로 갈까 하면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고민하면서 세월을 채우나이다.
이러한 인간의 갈등과 고민과 욕심스런 선택은
나이가 들수록 심해져만 가나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의 얼굴은 죽음이 가까울수록
더욱 일그러지고 추하게 변해가나이다.
선택은 마음속의 선과 악의 갈등이며
사랑과 미움의 고민이며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싸움이나이다.
사람이 태어나는 의미와 목적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아이 낳고 집을 장만하는데 그치지 않고
세상의 이치와 우주의 진리를 깨우치기 위함이나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죽는 것을 반복하지만
깨달음을 얻어서 참된 기쁨과 평화 자유와 사랑을
누리는 사람은 참으로 적으나이다.
부와 명예와 권력이 제아무리 커다하더라도
어차피 두고 저승으로 건너가야 할 것들…….
차리라 저 세상으로 넘어가는 영혼의 풍요로움에
시간과 정열을 쏟는 것이 지혜롭나이다.
이제 그만 힘들어 하지 마시고 아파하지도 마소서.
강물이 흘러 넓은 바다로 가듯이
스스로 선택하여 고통스러워 마시고
인생의 강물 위에 자신의 조각배를 띄우소서.
세상과 우주의 이치와 힘이 님의 인생을
큰 기쁨과 깊은 평화 그리고 무한한 자유와
목마르지 않는 사랑의 바다로 인도할 것이나이다.
아무리 갈증이 심해도 강물의 물을 두 컵밖에 마실 수 없다면
재물과 명예와 권력의 갈망이 아무리 커다하더라도
지구와 우주를 지배할 수는 없나이다.
참으로 사랑하는 님이시여,
오늘 하루만 쓴 것과 단것, 사랑과 미움
좋은 것과 나쁜 것, 높은 것과 낮은 것,
천한 것과 귀한 것을 선택하지 마시고
그냥 그대로 흘려보내소서.
단 하루의 이러한 체험이
님의 인생을 행복으로 바꾸어 놓을 수도 있나이다.
나이 들어가는 님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거울을 통하여 찬찬히 새겨 보소서.
님께서는 언제나 그리고 영원히 행복할
권리가 있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고귀한 분이시나이다.
님시여,
참으로 사랑하나이다.
2010년 11월 들꽃마을 최영배(비오) 신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