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배 신부님 묵상카드
2010년 3월 묵상카드

단상 83 (10년 03월)

나무는 가지가 부러져도 계속 성장하는데
사람들은 자신의 상처에 쉽게 좌절합니다.

사랑의 님이시여,
지난 겨울은 몹시 추웠나이다.
지난 겨울은 유독 눈이 많았나이다.

눈의 무게에 못 이겨 커다란 나무의 가지들이
뚝뚝 부러지고 말았나이다.

그래도 나무들은 봄이 오면서 새싹을 틔우고
또 다른 가지들을 만들어가면서
성장을 이어가고 있나이다.

산불이 일어나 커다란 산을 생명 없는 잿더미로 만들었나이다.
키 큰 나무들이 없어지고 숲속의
날짐승과 기는 짐승들도 사라졌나이다.

그런데도 봄이 오니까 여기저기에서 새싹이 움트고
사라졌던 나무들의 시커먼 기둥에서
생명의 싹이 또 다시 꿈틀거리고 있나이다.

산불이 제 아무리 험악해도 그들의 뿌리는 해할 수 없었나이다.

이렇듯이 우리가 사는 자연을 포함한 이 우주의 힘과
원리는 모든 생명을 끝까지 살리려는
본성을 지니고 있나이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의 생명과 인생은
오죽하겠나이까?

이 광활하고 무한한 우주는 45억년의 수고를 거쳐
이 지구에 생명을 만들었고
또한 진화시켜 왔나이다.

그 중에서도 사람의 생명을 모든 생명들의
으뜸으로 우뚝 세웠나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생명과 존재는 모든 별들과 공간이
힘을 합쳐 45억년 동안 공들여 만들어진 위대한 작품이며
또한 유일무이한 절대적 존재이나이다.

모름지기 우주만물은 사람의 존재를 탄생시키고
또한 사람의 생명을 유지 발전시키며
나아가 사람의 존재를 완성시키기 위해 있으며
쉼 없이 활동하고 있나이다.

따라서 광활한 이 우주의 주인공은 바로 사람이며
구체적으로 바로 나 자신이나이다.

참으로 사랑하는 님이시여,
이렇듯이 우리는 자연과 우주의 힘과
원리의 무기를 갖고 있으면서도 80년의 짧은 세월을
다 채우지도 못한 채 쉽게 자신의 생명을 버리고 마나이다.

왜 우리는 만물의 으뜸인 자리에 있으면서도
그 가치와 품위를 무시한 채 비굴하고 조잡하게
인생을 끌고 가나이까?

왜 우리는 45억년의 힘과 의지를 갖고 있으면서도
80년의 인생의 희노애락에 쉽게 좌절하고
무릎을 꿇고 마나이까?

나무의 가지들이 부러지고 산의 붉은 불들이 공격하여도
나무의 생명은 멸할 수 없듯이
사람의 인생이 제 아무리 험하고 고달파도
그 사람의 존재만큼은 해할 수 없고
생명 또한 끊을 수 없으며 또한 끊지도 않나이다.

그러하오니 님이시며,
두려워하지 마시고 힘을 내소서.

바뀐 환경과 역할에 고민하거나 좌절하지 마시고
그냥 순응하소서.

사람의 재물과 환경과 역할은 존재의 가치에 비하면
부질없고 하찮은 것들이 아니나이까?

또한 변하고 있는 그 사람을 마주 보면서
적대심과 증오심을 거두어들이소서.

모든 사람은 기대 되는 존재가 아니라
사랑의 대상일 뿐이나이다.

그 사람을 놓아 주시면 우주와 자연의 보이지 않는
손이 나를 잡을 것이나이다.

내가 스스로 나의 인생을 계획하고 끌고 가려고 애쓰지 마시고
무한한 우주의 이치와 힘에 자신을 맡기소서.

왜냐하면 이 우주와 지구의 근본 방향과 에너지는
사랑이기 때문이나이다.

우주가 사람을 만들었지 사람이 우주를
만들지는 않았나이다.

사람이 제아무리 욕심이 많고 능력이 뛰어 나다 하더라도
만들어진 것이 만든 것을 능가하지는 못하나이다.

우리가 교만한 욕심을 버리고 기꺼이 주어진
환경과 역할에 순응하기만 한다면
나는 80년 동안 늘 행복할 수 있나이다.

겸손하신 님이시여,
님께서는 저희들의 못난 꼴을 지금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계시나이다.
그렇듯이 스스로의 삶도 받아들이시어
우주의 하나뿐인 님의 생명과 존재를 꼭 완성하소서.

님께서는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시나이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2010년 3월 들꽃마을 최영배(비오) 신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