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배 신부님 묵상카드
2010년 2월 묵상카드

나무는 아래 가지를 정리하면서 성장하는데
사람은 과거를 정리하지 않은 채 미래로 달려갑니다.

사랑의 님이시여,
나무는 아래 가지들을 버리면서 성장하나이다.

만약 아래 가지들을 욕심스레 고집하면서
높이 크기를 바란다면
나무는 생명을 잃고 말 것이나이다.

왜냐하면 땅이 아무리 넓고 깊다하여도
아래 가지와 위가지 모두에게 거름을 제공하지 않으며
태양이 제 아무리 절대적이라 하여도
아래 가지에 까지 빛을 제공하지는 않나이다.

이렇듯이 자연과 우주는 지난 것과
새로운 것을 함께 키우지는 않나이다.

모름지기 사람 또한 자연과 우주의 환경에
정확하게 속해 있나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의 과거를
그냥 둔 채 내일로만 치닫고 있나이다.

경제적으로 더 풍요롭고 싶고
육신적으로 건강하게 오래 오래 머물고 싶으며
사람들로 부터 찬사와 존경을 은근히 기다리고
너로부터의 사랑을 한 없이 요구하면서 살고 있나이다.

만약 오늘 우리의 이러한 바람이
내일의 현실로 만나려면 과거를 정리하고
오늘의 삶에 충실하며 감사해야 하나이다.

과거의 그 사람은 충분히 용서해야 하나이다.
만약용서가 잘되지 않으면 그 사람의 존재와
생명만이라도 인정해 주어야 하나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나를 흔들고 괴롭히지 않았다면
또 다른 사람이 나에게 고통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나이다.

사람은 한 없이 흔들리고 엎어지면서 고통을 통하여
자신의 악성을 발견하고 또한 뉘우치고 반성하면서
본인의 생명과 존재의 품위가 커가기 때문이나이다.

자연과 우주가 나무를 그렇게 키우듯이
사람도 그렇게 품에 안고 키우고 있나이다.

사람의 능력이 제 아무리 크고
위대하다하더라도 공기와 비와 태양 없이 살 수 없다면
자연과 우주의 이치에 속해있어야 하나이다.

오늘의 아픔이 말할 수 없이 크고 깊더라도
봄이 오면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듯이
자신의 가슴의 공간을 비워나가야 하나이다.

모름지기 어제가 모여서 오늘을 낳았고
오늘이 모여서 내일이 만들어 지나이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만들었고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내가 만들어 가고 있나이다.

우리는 오늘의 아픔과 고통을 제거하기 위해
뉘우침보다도 남을 원망하면서 기도를 바치지만
돌아오는 것은 공허함 뿐이나이다.

무엇보다도 참된 기도는 무엇을 바라고
청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겸손이나이다.

지난날의 몇 년을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어찌 죽음 뒤의 삶을 희망할 수 있겠나이까?

지난날의 그 사람을 아직도 용서 못하면서
앞으로 만날 수많은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겠나이까?

모름지기 과거와 미래는 우리의 영역이 분명 아니나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분명 오늘 하루뿐이나이다.

사람의 영혼과 육신은 오늘 하루를 버틸 수 있고
극복할 수 있는 아주 적절하고 축복받은 존재임을
꼭 명심하소서.

오른손과 왼손이 동시에 주인이 될 수 없듯이
님의 과거를 힘들어 하지 마시고
오늘의 하인으로 부려야 하나이다.

참으로 사랑하는 님이시여,
그냥 그대로 오늘 하루를 지내소서.

아프면 아파하고 힘들면 힘들어하면서
일하고 먹으면서 휴식을 취하소서.

그 외의 것은 우리의 권리가 아니나이다.

이렇게 이렇게 하루를 살고 또 하루를 지나다 보면
우리의 키가 그 어떤 사람의 권위보다 높고
그 어떤 사람의 가진 것 보다 훨씬 클 것이나이다.

그래서 님이시여,
님의 나날들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우시더라도
오늘 하루만 사랑해 주소서.

그러면 님께서 바라지도 않았던 행복까지도
내일의 대문 앞에 기다리고 있을 것이나이다.

님께서는 못나고 어리석은 저희들의
지난 세월들을 지금까지 품어주고 계시지 않나이까?

님의 그 크고 풍성한 그늘이 없다면
저희들의 지친 인생의 잠자리는 어디에서
마련하겠나이까?

참으로 고맙습니다.

2010년 들꽃마을 최영배(비오) 신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