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배 신부님 묵상카드
2009년 10월 묵상카드

굽은 강은 물고기가 편하게 살지만 곧은 강은 물고기가 힘들게 삽니다.


사랑의 님이시여!
모든 사람들은 한평생을 살면서 고유한 저마다의 역할을 지니게 되나이다.

그리고 그 역할에 따르는 고통과 기쁨의 무게도
사계절을 똑같이 겪어 나가듯이 공평하게 등에 지게 되나이다.

어떤 사람은 역할이 바뀌면 고통의 양이 줄어들지 않을까?
아니면 재물이 많으면 기쁨의 양이 더 커지지 않을까? 하고
기대를 모아 보지만 되돌아보면 그 양과 무게가 항상 같음을 경험하게 되나이다.

무릇 세상 사람들은 인생의 보다 나은 역할을 차지하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만
정작 너와 나의 행복의 관건은 역할이 아니라 삶의 속도임을 잊고 사는 듯 하나이다.

사람은 혼자 웃을 수도 없고 혼자 울 수도 없나이다.
나는 너와의 관계 속에서 웃고 너는 나와의 교환 속에서 우나이다.
네가 웃으면 내가 행복하고 내가 울면 당신이 아파하나이다.
따라서 너와 내가 참으로 행복하려면 나의 인생의 속도를 줄여야 하나이다.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하면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고
반대로 아픔과 고통에 힘겨우면 시간은 더디게 흐르나이다.

누가 뭐래도 우리 각자의 인생의 문제와 사건들을
자신의 능력으로 피해갈 수 없는 일임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아픔과 고통의 삶의 산들을 묵묵히 감싸면서 천천히 흘러야 하나이다.
그래야 내 앞과 옆에 있는 그 사람의 거친 호흡이 편하게 바뀔 수 있게 되나이다.

같은 물건이라도 손에 들면 무겁고 등에지면 가벼워지는 원리와 같은 것이나이다.
하지만 우리 중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주어진 문제와 아픔들을 쉽게 해결하려고
법정속도를 초과해서 달리고 있나이다.

이러한 사람은 참으로 일방적이고 독단적이며 옳고 그름이 분명하고 논리적이며 직설적이나이다.
이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 덩달아 숨이 가빠지고
커피의 향내를 맡을 수 없으며 의자에 앉아 있으면 다리에 쥐가 저리나이다.

참으로 사랑하는 님이시여,
우리 모두의 인생의 강은 예외 없이 높고 낮은 산들이 바다에 이르기까지
여기와 저기에서 계속해서 가로막고 또 가로막고 있음을 우리가 보고 있지 않나이까?

강이 터널을 뚫고 흐를 수 없다면 주어진 모든 상황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하면서 천천히 흐르소서.
세모는 세모대로 네모는 네모대로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사랑이나이다.
상대의 변화가 참으로 더디고 힘들고 까마득하더라도 사랑의 길 밖에 없음을 어찌하겠나이까?

사실 문제가 있는 그 사람 안에는 멋있는 소나무도 있고 기암절벽도 있으며
보이지 않는 들꽃들도 자라고 있나이다.
우리가 그 사람 주변을 천천히 그리고 거부하지 않고 계속 흘러준다면
산과 강이 어우러진 한 폭의 그림을 완성할 수 있나이다.

님이시여,
부디 마음의 속도를 늦추소서. 세상적인 급한 욕구를 버리시고
편안한 사랑으로 채우시어 짧고 험하고 아픈 세상 행복하게 살으소서.
참으로 우리 마음에 진실한 사랑만 있다면 이 모든 일이 현실이 될 것이나이다.

님께서는 이미 그 사랑을 지니고 계시나이다.
왜냐하면 보잘 것 없는 저희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계시기 때문이나이다.
또한 멀리 떨어져 있는 저희들도 님의 그 사랑을 느끼고 있나이다.

참으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