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배 신부님 묵상카드
2009년 9월 묵상카드

키 큰 나무의 그늘은 시원하지만 키 작은 나무의 그늘은 오히려 답답합니다.


사랑의 님이시여!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똑같이 맞이하듯이
웃음과 눈물도 똑같은 양으로 겪어 가게 되나이다.

부자도 가난한 이들도 유식한 사람도 무식한 사람도 울고 웃나이다.
건강한 사람도 병든 사람도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도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도 똑같이 울고 웃나이다.

이렇듯이 모든 인생이 웃고 우는 것이 한결같다면 진정으로 사람을 웃고 울게 하는 것은
사회적 직책이나 능력이 아니라 사랑임에 틀림이 없나이다.

진실한 사랑을 열심히 구사하면 가난한 사람도 병든 사람도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도 항상 웃을 수 있나이다.
인생의 행복 여부는 웃음의 양에 달려 있나이다.

우리는 그 누구에게 물어봐도 사랑한다고 자신 있게 대답들을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세상의 모든 것을 잃은 사람처럼 참으로 암담해하고 있나이다.

열매를 보면 그 나무를 알 수 있고 결과를 보면 원인을 밝혀 낼 수 있나이다.
고통의 현실을 손에 들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사랑의 뒤틀림을 인정하지 않은 채
줄곧 상대의 꼴사나운 상태만 공격을 하나이다.
이기적인 사랑은 머리가 아프고 희생적인 사랑은 가슴이 아프게 되나이다.

지금 내가 열심이 최선을 다해 사랑했던 결과가 고민이라면
나는 너를 위해 사랑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사랑했음을 시인해야 하나이다.

참으로 사랑하는 님이시여,
지금이라도 고민과 갈등과 고통의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으시면
그 사람에게 충분한 공간을 주어야 하나이다.
여기서 공간이란 자유이나이다.
자유는 그 사람의 주체의 중심이며 인격과 존재의 뼈대이나이다.
모든 사람은 독립된 인격체로서 본인의 자유를 구사할 능력과 권리를 지니고 태어나나이다.

이 자유는 천부적인 영역이며 어떤 이유에서든
타인으로부터 침해받아서는 안 되는 본인만의 공간이나이다.

사람은 이 자유를 통해서 선과 악, 옳고 그름,
미움과 용서, 자비와 복수, 절대자와 미신을 택할 수 있나이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 인간은
노예나 가축의 신세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나이다.

높은 나무는 공간이 충분하고 낮은 나무는 공간이 협소하나이다.
같은 그늘이라도 시원함과 답답함의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오듯이
나의 사랑이 아무리 진실하다 하더라도 그 사람 곁에 너무 가까이 계시면 안 되나이다.

산속의 나무나 강 속의 물고기도 자연의 힘만으로 충분히 살아가지 않나이까?
청컨대 인위적인 욕심으로 그 사람 곁에 오래 머무르지 마소서.
그 사람에 대한 나의 염려와 관심보다 자연과 우주의 섭리와 사랑이
그 사람과 끊임없이 호흡을 나누고 있나이다.

그래서 님이시여,
지금보다 조그만 더 그 사람으로부터 떨어져 있으소서.

옳고 그름을 끊임없이 강조하여 그 사람을 좁은 공간으로 몰아세우지 마시고
변호사의 입장에서 부드러운 방석을 만들어 주소서.

변화의 더딤을 안타까워하지 마시고 가을이 오고 겨울을 지나 봄을 자연스레 기다리듯이
편안한 마음으로 오늘을 지나소서.

오늘의 그 사람을 인정하면 내일의 변화는 오지만
현재의 그 사람을 부정하면 기다리던 변화는 영영오지 않나이다.

좁은 어항 속의 물고기가 그 동작이 거의 멈추어 있듯이
우리가 진정으로 상대방의 자유로운 공간만 보장해 준다면
그 사람은 깊은 강과 넓은 바다에서 참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클 것이나이다.

참으로 사랑하는 님이시여,
사랑이란 참으로 어렵고 쉬우나이다.
사랑이란 진정으로 고통스럽고 또한 행복하나이다.

부디 쉽고 간단한 길을 택하시어
사랑하는 그 사람과 오래 오래 웃으면서 고달픈 세월들을 가볍게 넘으소서.

참으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