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배 신부님 묵상카드
2009년 1월 묵상카드

과일 나무는 스스로의 열매를 따먹지 않습니다.


한 알의 씨앗이 땅에 심어져 열매를 맺기까지 많은 세월이 필요 하나이다.
따스한 봄 햇살의 즐거움도 있지만 여름날의 뜨거운 뙤약볕을 견뎌야 하고
목마른 가뭄과 잎사귀까지 담기는 홍수를 견뎌야 하며
뿌리 채 위협하는 폭풍의 바람을 피하지 못한 채 가을의 짧은 안식을 맞이하게 되나이다.

이렇게 과일 나무는 스스로의 시련과 고통을 다 겪으면서도
본인의 열매를 자신의 것이라 고집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기꺼이 넘겨주나이다.
그리고 겨울의 하얀 침묵 속에서 이듬해의 봄을 묵묵히 기다리나이다.

사람의 인생도 이와 같아야 하나이다.
자신이 지난 세월동안 겪어왔던 수많은 수고와 땀, 눈물과 아픔, 좌절과 실패를 통하여
지니고 있는 현재의 부와 행복, 명예와 권력, 자식과 손자의 열매는 과일 나무처럼
자신의 소유가 아님을 꼭 명심해야 하나이다.

이 세상의 그 어느 존재도 본인의 것을 자신의 소유라 주장하지 않나이다.
달도 별도 꽃과 바람도 새와 숲 모두 다 다른 존재를 위해서
기꺼이 세상에 있는 참사랑의 아름다움들이나이다.

이런 무소유의 존재와 존재 사이에서 유독 인간만이 내 것이 있고 너의 것이 따로 있으며
담장이 있고 담장위의 철조망이 있으며 현관의 자물쇠가 있고 통장의 비밀번호가 있나이다.

바다의 섬들이 수면위로는 모두 다른 개체이지만 수면 아래로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공동체이듯이
우리 모든 사람도 성격과 환경은 서로 달라도 인연으로 이루어져 있는 하나의 사람이나이다.

인간의 삶은 본래부터 빈손으로 태어나서 빈손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알몸의 인생들이나이다.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도 인생에서 만들어 놓은 자신의 보따리를 들고
저승의 길을 출발할 수가 없음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지 않나이까?

그래서 님이시여!
어차피 두고 갈 자신의 소유를 살아 있는 동안 미리미리 이웃에게 나누어 주소서.

재물을 가난한 이들의 생존을 위해 건네주시고
명예의 월계관을 나를 위해 수고한 사람들의 머리에 얹어주시며
노력으로 쟁취한 권력을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허리를 굽히면서 쓰소서.

그리고 본인의 아들은 다 키워서 며느리에게 넘겨주시고
딸은 새하얀 면사포를 씌운 채 사위의 품에 안겨주소서.
짧고 긴 인생에서 남는 것은 분명 자기 자신뿐임을 너와 내가 뼈저리게 잘 알고 있나이다.

참으로 이 세상의 소유는 다 사라지지만
너와 나의 존재만은 해와 달과 별처럼 영원히 이 우주와 함께 있으리이다.
언젠가는 사라지고 말 것에 집착하지 마시고
영원과 영원으로 이어지는 나의 존재에 인생의 초점을 맞추소서.

그렇게 그렇게 살다 보면 우리는 있어도 배부르지 아니하고 없어도 배고프지 않으며
높아도 어지럽지 아니하고 낮아도 부끄럽지 않는
언제나 어디서나 원래의 그 자리에서 작은 미소 머금은 채 늘 행복 하리이다.

참으로 사랑하는 님이시여!
올 한해에는 자신의 작은 것을 버리고 가장 귀한 영혼과 존재를 얻어가는 축복의 열두 달이 되소서.
저와 가난한 이들이 기도해 드리리이다.

고맙습니다!